호주삶

호주는 인종차별이 정말 심할까?

tvbodaga 2019. 12. 14. 17:25

1. 백호주의의 유래를 좀 짚어볼까?

호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우려하는 것이 호주의 백호주의와 인종차별인듯 싶다. '화이트 오스트렐리아 폴리시(White Australia Policy)' 라고 불린 백호주의는 이민정책에 있어서 유색인종을 배척하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백인의 동질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인종차별주의의 대표적 운동이다. 1855년 빅토리아주가 반중국인 입법을 제정한 이래 여러주에서 동참하고  1901년 연방정부가 전호주를 아우르는 유색인종의 이민을 제한 하는 입법을 제정한 이래 놀랍게도(!) 20세기 중반을 넘은 1973년이 되서야 폐지되었다.

1906년 당시 백호주의 상징물로 쓰였던 뱃지-'호주인을 위한 호주, 화이트 오스트렐리아'


백호주의가 생겨난 데에는 초기 골드러쉬 이민자들의 반중국인 정서에서 시작되었다. 1851년 당시 호주내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고 이때부터 세계적으로 골드러쉬가 이루어진다. 금을 찾기위해 호주로 호주로 모인 세계의 인간들.  이때 들어온 중국인들이 1770년이후 들어온 초기 유럽이민자들과 경쟁구도가 생기고 문화적인 충돌이 생겨난다. 

초기 유럽이민자 금광채광인부들은 소규모 구룹으로 일을 하고, 적정 임금 수준에 적당한 량의 일을 하였다. 그런데 유럽이민자 이후에 들어온 중국인 광부들은 중국인들 특유의 화합으로 거대 조직을 만들어 가고, 지금의 차이나타운과 같은 독립거주지역을 만들고, 저임금을 받고도 더 많은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1851년 이후 20년동안 호주로 들어온 중국인들은 남자 4만명, 여자 9천명.

이런 금광을 둔 경쟁구도가 심화되면서 유럽계 이민 광부들 사이에 서서히 반중국인 정서가 만들어지고 특유의 제밥그릇 챙기기 싸움이 시작한다. 중국인들의 무분별한 금광채취로 강물이 흙탕물이 된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중국인들은 도둑이라는 온갖소문들이 양상되기 시작한다. 금광으로 인한 경쟁구도가 결국 집단 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으로 발전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1861년 금광도시 블란공(Burrangong)에서 최초의 무력충돌인 '램빙 플랫 폭동(Lambing Flat riots)'이 일어나고,  제밥그릇 챙기기 구도는 결국 1901년 연방정부가 들어서면서 호주전체를 아우르는 입법이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이민 제한 령 1901'- '모든 유색인종의 이민을 제한하고 백인의 나라를 영원히 유지하라'는 모토아래 생겨난 법이다. 이 법은 수정이 되었지만 그 근조가 유지되다가  1973년이 되서야 폐지되었다. 

1975년에는 호주정부가 반인종차별법을 제정하였고 오늘날은 다문화주의가 호주의 근간이 되고있다. 인종차별국가라는 오명을 벗기위해 호주정부와 호주인들은 더 치열하게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는 아직도 망령처럼 호주사회를 떠돌아 다닌다고 말할 수 있겠다. 때로는 언제 어디서 어떤 계기가 되어 폭발할 지도 모르는 휴화산처럼. 정치적으로도 1996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폴리 핸슨의 백호주의로 돌아가자는 선거운동은 당시 충격적이다. 물론 이 여인은 온갖 스캔들과 추문을 뒤로하고 2007년 역사의 장으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녀가 남긴 호주사회에 남겨진 백호주의 사상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준다.

최근에 들어 인종차별이 가장 크게 논란이 된 것은 2005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전후에서 시드니 크로눌라 해변에서 벌어진 앵글로 색슨 백인계와 레바논계의 충돌이다.


2. 살면서 느끼는 인종차별?


호주에 처음 왔을 당시에는 콜스나 우러쓰 같은 대형 수퍼마켓에 전자보안 시스템이 없는 곳이 많았다. 그러면 가방을 들고 가는 경우 나올시에 시큐러티가 가방검색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 몇번 대형 수퍼마켓에서 시장을 보고 나오면 으례히 직원이 가방검사를 하는데 정말 모멸감이 들더라. 물론 나중에 호주친구를 사귀고 호주친구와 가면 그 친구도 가방검사를 하고 가방검사를 당하는 그 친구도 으례히 그러려니 한면서 가방을 열어 보이곤 했다. 한국에서 그런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내가 아시안이라서?' 라는 의심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 대도시에는 동양인이 많고 셀프계산대도 설치될 정도다


그리고 상점직원들도 좀 불친절한 경우를 만나게 된다. 주문을 늦게 받으러 오는 경우, 옷가계에 들어갔는데 유독 불친절한 경우. 그런경우는 한국인끼리도 겪게 되는 불친절이지만 다른 나라에 오게되면 혹시 '이것이 인종차별?' 그런 의구심을 하게된다. 대부분은 그냥 개무시하고 넘어간다. 그저 그렇게 불친절일 뿐이지 하면서 어짜피 내가 필요한 물건 사고 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종차별을 느꼈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무시당한 느낌에 열도 받고 스트레스도 받는다. 정말 그것이 인종차별이었을까 하는 확신도 없으면서 나혼자 분통을 내면 더 스트레스만 받는듯 하다.


호주에서 주류는 버틀숍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호주 1년차에 이런경우도 있었다. 호주는 주류를 판매하는 상점이 버틀숍(Bottle shop)이라고 정해져 있다. 슈퍼마켓에서는 주류를 살 수가 없다. 이런 버틀숍은 술을 마시는 펍근처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다 와인을 사기 위해 버틀숍으로 들어갔다. 마시고 있던 맥주병을 손에 들고 들어가서 와인을 고르고 값을 계산하려는데 맥주값까지 계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맥주는 여기서 산것이 아니라고 애기했는데, 도통 내말에 인정하지 않았고, 작은 언쟁이 이루어졋다. 결국 숍직원이 매니저를 불렀고 매니저와 다시 차근차근애기를 해서 맥주값을 제하고 계산하고 나왔는데 나오면서도 설마 내가 맥주를 숍안에서 열어 마시면서 계산을 안했을까라고 화가좀 났다. 

나중에 호주친구와 그 애기를 하는데 '호주에서는 술은 길에서 마실수 없다'란 것이다. 또한 버틀셥에 마시다 만 술을 들고 들어 오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니 숍직원은 당연히 맥주를 다른데서 들고왔으리란 생각은 안하게 되고, 그런 경우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란다. 그러니 그 직원은 당연히 내가 들고 있는 맥주가 계산도 하지 않고 먼저 마신 경우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란 것이다. 

처음 살다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 이 나라 관습이나 룰을 모른채 행동하다 그것이 차별이려니 혼자 억울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인종차별로 의구심이 드는 상황들이 2년차 3년차 되면서 생기지 않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것은 영어 구사력이 나아지면서 대화가 더 잘되어서도 있고, 이들의 상식수준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게되는 경우도 있있을테고,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인듯 싶다.

삼점 같은데를 제외하고 학교, 공공기관, 병원, 경찰 그런데서는 거의 인종차별이야 라고 생각될 만한 경험은 없었다. 대부분이 굉장히 친절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줄려는 모습도 보이고, 영어가 안되면 안되는대로 나름대로 대화를 하려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니 일상생활에서 인종차별을 걱정할 수준은 전혀 아니다. 

3. 사회에서 느끼는 인종차별?

개인과 개인이 만나면 좋은 친구이자 인종차별이란것을 모르고 지낸다. 그러나 다시 사회전체적으로 볼때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 기업체내에서 아시안이 승진을 하는 겨우는 백인이 승진하는 경우보다 그 기회가 적다. 같은 능력이 있다면 백인쪽을 선호하지 않는가 싶다. 

티비나 미디어에 아시안의 이미지는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는 모습이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아시안이 주류사회를 형성하는 모습을 드라마나 미디어에서 보는 것은 많이 드물다.

살아보면 그렇다. 1년차 2년차에서는 이 호주사회의 관습과 상식을 모르면서 부딪치는 문화충돌로 인하여 인종차별이라고 생각된 것들이 해수가 지나면서 그것이 인종차별은 아니었구나란 생각을 들게한다. 그러나가 더 해를 거듭하면 할 수록 이제 호주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약간의 기조를 읽어나갈 수 있는 경험치와 유대가 싸이면 호주사회의 또다른 이면을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기지 않나 싶다. 백인 사회에서 존경받고 차별을 안받으려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능력을 쌓는 수 밖에 없다. 능력으로 인정을 받으면 유색인종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같은 능력이라면 백인쪽을 더 선호한다고 하기때문에 더 능력을 쌓아서 실력으로 승부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해를 지날수록 더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