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역사가 짧다고 놀리지 마세요
호주 역사의 아버지 제임스 쿡 선장
유럽인이 실제로 이 대륙에 들어온 것은 17세기부터이며, 1606년 네덜란드의 두이프겐 (duyfken)호가 대륙 북부의 카펀테리아만에 내항한 것이 최초로, 그로부터 가끔 네덜란드의 배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17세기를 통하여 네덜란드인은 이 대륙의 북안 서안 및 태즈메이니아섬 등의 지역을 묶어 신 홀란드 (Nieu Holland)라고 불르기도 했다.
영국인으로서 이 대륙에 최초로 (1688)온 사람은 영국의 항해가 W.댐피어였고, 지금까지 유럽인이 가보지 않은 동해안 전체를 자세히 조사하고 문명인이 살수 있는 땅임을 밝혀 영국 영유에의 길을 연 사람은 제임스 쿡이다. 그는 거의 호주 발견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주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1777년 뉴질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남동단에 이르러 시드니쪽을 북상하여 보터니만에 상륙 다시 북상하여 요크곶 부근의 한섬에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동부의 영유를 선언하했다.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 웨일즈라는 명칭은 이때 생겼다.
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여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고 있던 죄수를 처리하지 못하게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새로운 유형식민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1788년 1월 26일 드디어 11척의 영국 선단이 영국국기를 펄럭이며 1030명 (그중 유형수는 726명)을 태우고 보터니만에 도착하였다. 이 날이 바로 호주 국경일중의 하나인 '오스트렐리안 데이'이다.
1813년 시드니 서쪽 블루마운틴 너머에 광활하고 기름진 들판이 발견되었다. 그해부터 양모의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목축업이 시작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발전의 제 1기가 된다. 1830년대에는 호바트 브리스번, 멜버른, 애들레이드 등에 새 식민지가 건설되었으며 에스파냐 원산인 메리노종의 양이 도입되고 개량되어 1807년에는 양모가 처음으로 런던에 수출되었다. 1810년에는 뉴사우스 웨일즈 주의 양 사육수가 부척 늘기 시작했다.
이민과 자연증가로 인구도 늘어났고, 자유이민이 증가함에 따라 유형을 중지하라는 요구가 높아져서 1840년에는 태즈메니아섬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하고는 유형이 중지되었다. 1851년에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서부에서 또 빅토리아주에서 다시 1862년에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도 금광이 발견되어 세계 각지에서 금을 찾으로 골드러쉬를 이뤘다..
제 2기의 대륙 개발은 이 금광에 의하여 촉진되었고, 금광 채굴자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밀의 재배 및 기타 농업이 발달하였다. 그후 이 나라의 농업은 영국 본국에 대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 되었으며, 낙농과 더불어 육류가공 냉동업도 발달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각 식민지는 영국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상호간의 연략도 원활하지 못하였으므로 자치권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았고,1823년 이래 입법원의 설치가 각 식민지에서 차례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1840년-50년대에는 권한이 더욱 확대되었고, 1855년에는 3권분립,양원제 책임내각제를 중심으로 하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헌법이 영국 본국의 인정을 받았고 이어서 다른 각 주가 같은 내용의 헌법을 제정하여 주권을 확립하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893년 이래 각 주 총리회의가 개최되면서 각 주를 통일하는 연방을 설립하려는 기운이 성숙,1900년에 연방헌법이 제정되었고 1901년 1월 1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발족되었다.
연방 헌법에 따라 연방의 수도가 잠정적으로 멜버른으로 정해졌으나 시드니와 멜버른의 수도쟁탈 싸움이 가열되자 1911년에는 수도지역 Australia Captital Territory이 결정되었고 그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인 캔버라를 1913년 캔버라가 수도롤 정해졌다. 드디어 1922년에 최초의 연방의회가 열렸다.
호주인들은 애보리진의 역사도 곧 그들의 역사요, 영국의 역사도 그들의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호주는 영연방국가의 일원으로 영국 여왕의 생일을 국경일로 한다. 호주의 많은 부분이 영국문화의 영향을 받고있다. 호주인들에게 '영국은 어머니의 국가'라고나 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호주인들의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긍짐은 우리나라 못지않다. 오랜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만큼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에도 존중을 하는 국제인이 되기를 바란다.